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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공무원 수기

[공무원 수기] 7급, 9급 공무원 장수생이 되는 이유와 그것을 깨닫고 결국 합격한 9급 공무원 장수생 수기

by COCOTEA 2021.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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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생이 되는 이유] 

1. 아침에 8시반정도에 일어나서 독서실 가면 9시반에서 10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가 유일하게 공부하는 시간...) 
2. 점심먹고 바로 들어가면 잠온다고 피시방가서 놀다가 돌아오면 4시반정도..... 
어짜피 1시간 해봐야 별차이 없다고 생각. 저녁 일찍 먹고 들어온다고 
또 나감..... 이런 경우 대부분 일찍 집에 가게 됨 
3. 밤에는 공부하느라 힘들었단 핑계로 새벽 두세시까지 TV시청 
4. 일주일에 월요일, 화요일.. 더러는 수요일까지 자리에 앉아서 7~8시간 
공부하고...........목금토일 통째로 놀기 
5. 책만 쌓아놓고 보지도 않으면서 책은 또 사고 결국 포기하기 
(학원 프린트만 깔끔하게 모아놓기-아직도 못 봤음) 
6. 평일엔 친구의 여자친구 생일까지 쫓아가서 축하해주고, 
주말엔 주말 핑계로 놀기 
7. 걸핏하면 인터넷 강의 듣는다고 도서관 안 가고 집에서 한다고 하면서, 
결국 강의는 두개 정도 듣고 하루종일 인터넷만 함. 

저는 수험생활 [천일동안] 의 900일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이런분이 있으시면 당장 바꿔야 합니다. 하나도 안됩니다. 위의 7가지가 저의 장수생 되는 비결의 핵심입니다.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상처뿐인 영광...]] 

저의 합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이보다 좋은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상처뿐인 영광...” 
학원 행정법 선생님이 9급은 2년을 넘기면, 7급은 4년을 넘기면 합격을 하더라도 결국 ‘상처뿐인 영광’이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신지 4년.... 7급을 합격해도 부족할 판에 이제야 9급 수기를 씁니다. 
제 수험생활의 95%는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제가 우연찮은 기회에 이렇게 수기를 올리게 되는 것은 제발 다시는 저같은 수험생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이번 시험에서 합격한 이유는 4년동안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것 때문이지 여러분께 본이 되게 공부해서는 아닙니다. 이글이 저처럼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못했던 장기 수험생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1년 1월 15일] 
무작정 학원에 갔습니다. 어떤걸 보면 좋겠냐니까 학원 원장이 세무직도 많이 뽑는다고 좋을꺼라고... 난 공대생인데 중간부터 들어도 괜찮냐고 했더니, 다 그렇게 한다고... 
☞☞☞ 처음 강의를 듣는 분이라면 학원 꾐에 넘어가서 중간부터 듣지 말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십시오. 모르는 개념을 당연스레 강의 하고 있는 강사를 보면 뒤통수라도 때리고 싶습니다 

[2001년 9월 어느날] 
처음 7급 시험을 봤습니다. 9급을 합격하면 7급 합격 못한다고 해서 건방지게 9급 시험은 안 보고 7급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아는게 없으니 할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수험표 앞뒤로 7과목 문제를 다 옮겨 적으니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항상 시험 끝나면서 하는 말 “내년에 열심히...” 
그러고 나서 공부도 안한 주제에 시험 끝나고 3개월을 쉬었습니다. 친구들 말이 시험보기 전까지는 놀고, 시험 보고나서는 쉰다고 했습니다. 

[2002년 9월..] 
그 해에도 9급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 7급시험.. 작년 시험 보고 나오면서 하던다짐은 어디 갔는지, 역시 아는 문제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국 작년보다는 몇문제 더 풀었지만, 결과는 비슷했고 느는 건 문제를 수험표에 깔끔하게 정리해 나오는 능력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과 마찬가지로 2002년에도 내년에는 열심히 하자...다짐만 수천번 했습니다. 
☞☞☞수험생에게 다음 시험은 없습니다. 저는 항상 시험 보기 2주전이면 다음시험을 보겠다고 포기 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2003년] 
처음 9급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시험 준비한 지 5개월 밖에 안되는 후배보다 낮은 점수를 맞았습니다. 그 후배한테는 점수를 거짓말을 했지만, 저는 죽고 싶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술을 마시고 막 울었습니다. 왜 자기를 사랑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못 해주느냐고.... 
저는 어머니도, 누나도, 또 여자친구도 사랑했지만 공부는 그 절실함과 반대로만 치달았습니다. 일주일 넘게 계획을 지키는 것조차 저에게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한 공부의 양이 제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의 정도라면, 저는 그들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은 꼴이었습니다. 또 괴로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또 도서관에 앉아 있지 못할 자신을 알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습니다. 

[2003년 7급 시험] 
영어 한과목을 통째로 찍었습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푼 과목도 점수는 형편 없었습니다. 시험보는 날 꿈이 좋았다며 기대하는 누나와 엄마에게 저는 별로 기대하지 말라는 말 외에는 아무말도 해줄수가 없었습니다. 불합격을 알고 있는 나에게 합격을 기대하는 사람 앞에서 태연한 척 하는 것은 불합격을 알리는 것보다 몇백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누나는 다시 한번 해보라고 뭐 그런걸로 상심하느냐고 저를 위로 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는 누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2003년 11월] 
행정직으로 직렬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행정학이라는 책을 첨으로 보고 행정법은 이전 7급 공부하던 때 어깨 너머로 배우던 것을 토대로 공부 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는 잘 안되면, 같이 공부하는 사람을 만드십시오 
제가 스터디를 하기로 맘먹은 것은, 저 혼자는 너무 나태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터디라는 게 같이 공부를 해야만 하는게 아니고, 생활만 하는 스터디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나오게 되고 밥만 같이 먹는... 저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직장을 그만 두게 되어 그 시기에 옆에서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공부가 안 될 때는 말동무가 되어 주었지만, 공부가 잘되는 날에는 집에 갈때까지 말한마디 않고, 옆에서 소설책만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잠들 때마다 감사드렸습니다. 그런 여자친구의 도움과 스터디원의 성실함으로 안정을 찾고, 드디어 12월, 제 수험생활 처음으로 테잎을 첨부터 끝까지 들었습니다. (선행정학 약 20일) 

오전 영어(이성철), 국어(재정)하고, 오후 국사(정재준), 행정법(김윤조), 행정학을 돌아가면서 5월 시험에 사이클을 맞추어 갔습니다. 저는 공부를 않던 습관이 언제 다시 살아 날것만 같은 불안함에 절대 무리 하지 않고 주말오후엔 꼭 쉬었습니다. 그러던 중 2월 15일 인천 공고가 났습니다. 인원도 많아서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수험생활의 95%는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그래도 남에게 떳떳하게 나 공부했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다면 이 두달 정도였습니다. 
집중력이 좋으신 분들은 13~14시간씩 하시지만, 저는 9시부터 11시까지 했습니다. 집에가면 그냥 쉬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쉰게 아니라 저는 오래 공부하는 습관이 없어서 오히려 쉬지 않고 하면 능률이 떨어지므로 집에가서는 가족들과 얘기 하는게 더 능률적이었습니다. 한번은 시험이 2주 남아서 일요일까지 풀로 공부했더니 주중에 놀아버리는 역효과가 났습니다. 

12월 - 국사 문제풀이 할정도 수준까지는 됨(점수로 치자면 75-80) 
행정학 ; 테잎 1회독 
계획 : 1월 10일까지 행정법 마무리 시험보기전까지 행정학 반복..(행정법은 7급 볼때 강의를 하도 여러번 들어서 겨우 강의 안 듣고 책을 볼정도의 수준 - 점수로 치자면 65~70) 
하지만 행정법은 의외로 오래 걸려서 25일이 되어서야 겨우 행정법 총론이 끝났습니다. 겨우 20일 남았는데 행정학은 테잎 1회독이 전부니 답답했습니다. 국사는 점수가 85~90(1월 스터디 기출문제풀이 하루에 한시간씩 한 결과)까지는 올랐는데 나머지는 암울 그 자체였습니다. 행정법도 1회독은 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월 25일 최종결론...] 
잘 모르는 행정학을 파는것보다 그래도 좀 아는 행정법을 전략으로 삼고, 행정학은 70~80을 목표로 기출만 풀자.... 
점수 목표 -- 국사 90 영어,국어 75~80(장수생이면 컨디션 좋은날 이정도 나옵니다. 이걸두고 영어 국어 기본이 있었다고 하실분은 없으실겁니다) 행정법 95, 행정학 75~80... 이렇게 잡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잘 하면 가산점 3점 포함 85점은 나올 것 같았습니다.[실제점수(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 국사 90 ,영어 75, 국어 80, 행정법 100, 행정학 - 85, 가산점 - 3, 89점,컷84] 

행정학 책 대신 25일 1회독을 마친 행정법을 다시 들었습니다.그리고 ox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헤깔리거나 꼭 중요한 문제를 ox를 만들어서 시험보기 전날 그것만 보기로 했습니다.(인천시 행정법이 쉬워서 만점 맞은게 큰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ox가 효과가 많았습니다) 
[Tip - 행정법을 답안지에 옮기니 1번이 4개, 2번이 4개, 3번이 4개,4번이 4개, 5번이 4개 나오더군요] 
그렇게 다 만들고 나니 시험이 10일 남았습니다.그리고 행정학 책을 폈는데 정말 생소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틀은 잡아놓은 터라 해설을 보면 문제를 알 듯도 했습니다. 기출문제만 40개 정도를 뽑았습니다(물론 인천시 포함) 그리고 이것만 보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써 나갔습니다.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그 근처 이론을 간략히 정리하고, 더 깊은 부분은 나오면 틀리겠다고 포기했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전략과목을 중점적으로 하고 자신없는 과목은 아예 제치고 80점정도만 맞겠다고 달라드는 것은 제 수험생활에 유일하게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행정학을 짧은 기간 공부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했듯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 결코 최선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그로 인해서 시험 2주전 제가 시험을 포기(그동안 저의 고질병) 하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짜피 모두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이 떨어지는 것이고, 그 부족함을 어떻게라도 메우려고 하는 사람이 합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시를 합격하신 분들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말이 결코 겸손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합격생중 자신이 넘치게 공부했다는 사람은 몇 안될겁니다. 

마지막까지 포기 하지 마시고, 정 안되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포기 하지 않아야 하는 명분을 두십시오. 그것이 제가 오늘 이렇게 긴 글을 쓴 이유입니다. 

앞에서 쓴 글처럼 공부했으면 저는 앞으로도 몇 년 더 공부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상황이 아무리 않 좋아도 열심히 못했기 때문에 공부 안되는 사람의 맘을 잘 압니다. 집에는 빚쟁이가 드나들고, 여자친구가 직장이 없어 떠돌아도 전 공부가 되지 않아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스터디를 하든, 내기를 하든, 학원을 다니든 명분을 만들어서 3,4개월만큼은 꼭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1등을 못해봤고, 백점을 맞아본 적도 없고, 커트라인 근처에 가본적도 없습니다. 더구나, 영어와 국어도 뛰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남의 수기를 읽을 때마다 저사람은 영어를 잘했군, 기초가 있었군, 행정학과이군, 원래 추진력이 있군, 작년에 1점차로 떨어졌었군, 이런 식으로 항상 핑계를 대며 저스스로를 위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변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합격했습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훨씬 뛰어 나십니다. 

저는 합격했다고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저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글을 쓰는 것입니다. 제가 모범적인 수험생활을 했다면 못 쓰겠지만, 제가 해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압니다. 결코 마지막까지 포기 하지 마십시오....cafrio@netian.com 

 

 


[사노라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작년 9급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그날도 늦잠을 자고 11시쯤에 버스에 올랐는데 
여성시대에 서 저노래가 나왔습니다. 
가사 보셨나요? 
한번만 더 가사를 보세요. 

저는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려봤습니다. 
너무 두려웠습니다. 
시험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늦잠자고 그 시간에 가는 나, 
어짜피 가도 공부도 하지 않을 나.... 
그런 현실이 너무 두려워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기분만 
가득한 저에게, 
그런 나에게 김장훈이 그러더군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내일은 해가 뜬다...." 

초등학교 이후로 눈물 한번 흘려본적 없는 저였는데, 
그날은 정말 주루룩 눈물을 흘렸습니다. 
버스 맨 뒷좌석에서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모든 세상이 정지된것처럼 맑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작은 해지만 해가 뜨려고 하는군요. 
여러분 젊다는게 한 밑천이라는 말 정말 좋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카페에 들러 제글을 보면서 참 마음이 착찹해 지는군요. 

연신 고맙다고만, 그냥 아무말도 없이 고맙다고만 하시던 어머니.... 
아무렇지 않은 듯 기쁨을 감추던 누나.... 
눈물까지 글썽이며 축하해 주던 여자친구.... 

혹시 이글을 다시 읽으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 분들의 눈을 기억하세요. 
내일은 반드시 해가 뜰겁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가셔서 더 보실분은 별로 없겠지만, 
그냥 한번더 또는 새로 읽으시는 분들께 사실은 
이말을 더 하고 싶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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